태즈매니아…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나요?
꽤 많은 분들이 태즈매니아 데블(Tasmanian devil)을 떠올릴 것 같아요.
이름은 익히 들어봤는데, 이것이 실존하는 동물이던가? 전설이나 영화 속 캐릭터였던가? 아리송한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정답은 실존하는 동물이에요. 태즈매니아 데블은 태즈매니아 고유종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육식성 유대동물이에요. 멸종 위기를 겪으며 보호 노력이 집중되고 있는 야생동물이에요.
저는 머라이어 섬(Maria Island)에서 만난 경험이 있어요. 그날의 기억과 함께, ‘데블’에 대해 소개해 드릴게요.
🐻 너구리 + 반달곰 + 캥거루 = 데블 ?
예전에는 태즈매니아 데블을 주머니너구리 또는 주머니곰이라고도 부르기도 했어요. 생김새가 너구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작은 곰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겠지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머니가 있다는 점이에요. 캥거루나 웜뱃처럼 새끼를 주머니에서 키우는 유대동물이에요. 다만, 캥거루와 웜뱃이 초식동물인 것과 달리, 데블은 주로 육식을 하는 유대동물이라는 차이가 있어요.
데블의 몸통은 검은색이고 가슴에 흰 띠가 있어서 얼핏 보면 작은 반달곰처럼 보이기도 해요. 참고로, 성체 데블의 몸길이는 약 60cm 정도이고, 체중은 암컷 6~10kg, 수컷 8~14kg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아요.
👹 태즈매니아 데블이라는 이름의 유래
강아지처럼 자그마한 이 동물이 어쩌다 ‘악마(devil)’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그건 데블의 독특한 소리 때문이에요. 데블은 야행성 동물로,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하는데요. 이때 데블이 내는 소리가 독특해요 – 기침 소리, 코를 킁킁거리는 소리, 으르렁거림, 비명처럼 들리는 소리까지. 유럽 정착민들은 밤의 숲에서 이런 소리를 듣고 ‘악마’를 떠올렸고, ‘태즈매니아 데블(Tasmanian devil)’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대요.
🌿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
한편,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전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이 동물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어요.
퓨리니나.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불러온 이름 ‘퓨리니나’를 함께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학명은 Sarcophilus harrisii 이에요. 이름의 앞부분인 Sarcophilus는 ‘고기를 좋아하는’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 데블은 야행성 청소동물
데블은 해가 지기 시작하면 먹이를 찾아 움직여요.
데블은 동물의 사체를 주로 먹는 청소동물이에요. 작은 새나 파충류, 곤충 등 살아 있는 동물을 직접 잡아먹기도 한대요. 즉, 사냥도 하고 청소도 하는 육식동물인 셈이죠. 데블은 턱 힘이 아주 강력하대요. 동물 사체의 뼈까지 부술 수 있어서, 사체를 거의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 것으로 유명해요. 덕분에 생태계에서 중요한 청소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 사람에게 위험할까? (겁 많은 악마)
혹시 걱정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데블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보면 먼저 피하는 편이에요. 다만,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거나 어떤 위협을 느끼면, 데블은 입을 크게 벌려 이빨을 드러내는 방어 행동을 해요. 그리고 데블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위협을 느끼면, 몸 뒤쪽의 냄새샘에서 고약한 냄새를 내뿜는다고 해요. 스컹크처럼요! 또 다른 방어 행동이지요. ‘악마’라는 이름과는 달리, 사람을 찾아 공격하는 무서운 동물은 아니라는 거죠.

당부드리고 싶은 점은, 야생에서 데블을 만나더라도 데블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세요. 그리고 만약 태즈매니아에서 해가 진 후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속도를 줄여 운전하는 것이에요. 야행성 동물들이 도로에 갑자기 나타날 수 있고, 특히 데블은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를 먹기 위해 도로에 접근하기도 하니까요.
👀데블을 볼 수 있는 곳, 야생 or 동물원
데블은 태즈매니아 곳곳에 살지만, 야생에서 직접 마주치기란 쉽지 않아요. 야행성이고 사람 눈을 피해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인 서식지나 관찰 장소를 꼽자면:
- 머라이어 아일랜드 (Maria Island)
- 크레이들 마운튼 국립공원 (Cradle Mountain National Park)
- 아써-파이만 보존 지역 (Arthur-Pieman Conservation Area)
등이 있어요. 물론, 야생에서 데블을 마주치리란 보장은 없어요.

태즈매니아 데블을 반드시 보고 싶다면 동물원이나 보호 센터에 방문하는 방법도 있어요. 태즈매니아에는 데블을 관찰하면서 생태와 보전 활동을 배울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장소들이 있습니다:
보노롱 야생 보호구역(Bonorong Wildlife Sanctuary), 데블스@크레이들(Devils@Cradle), 태즈매니아 데블 언주(Tasmanian Devil Unzoo) 등이 있어요.
🏝️ 머라이어 섬에서 만난 데블
저는 태즈매니아 데블을 야생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머라이어 아일랜드에서였어요. ‘차 없는 섬’으로 유명한 이 섬은 야생동물의 천국이지만, 데블까지 실제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눈앞에 데블 한 마리가 나타났지 뭐에요.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것과 실제로 마주한 느낌은 조금 달랐어요. 몸집은 생각보다 더 작았지만, 단단하고 강인해 보였어요. 전설처럼 전해 듣던 ‘태즈매니아 데블’이 이렇게 실제로 살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어요.

🚨데블의 멸종 위기
데블을 만난 경험이 소중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어요.
태즈매니아 데블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기 때문이에요.
1990년대 후반 태즈매니아에서 데블 사이에 전염되는 데블 안면 종양 질환(Devil Facial Tumour Disease)이 처음 확인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어요.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이어서, 이후 야생 개체군이 크게 감소하는 원인이 되었어요.
🌱 데블 보존 프로젝트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보험 개체군(insurance population)’ 전략이 시작되었어요. 질병에 노출되지 않은 개체군을 별도의 장소에 격리하고 보호하는 방식이에요.
머라이어 섬은 그 중심지 중 하나로, 2012년 11월 처음 15마리, 이듬해 13마리가 추가되면서 총 28마리가 머라이어 섬에 들어왔어요. 이후 이 섬은 데블 보전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고, 제가 만난 그 데블 한 마리에도 이런 보전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는 셈이에요.
지난 몇 년 동안 데블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보전 활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요. 질병에 강한 개체를 연구하고, 건강한 개체군을 별도로 관리하고, 야생 개체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한때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데블은 이제 태즈매니아에서 살아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래전 사라졌던 호주 본토로도 돌아가고 있어요.
최근에는 호주 본토로 태즈매니아 데블을 되돌려보내려는 재도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요. 데블은 약 3,000년 전 호주 본토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2020년에 호주 본토에 26마리가 방사되었고, 본토에서 다시 야생으로 살아가는 데블의 모습이 관찰되기 시작했어요. 이후 현지에서 번식까지 확인되면서 ‘3천년만의 데블의 귀환’이 현실이 되고 있어요.
⛺ 태즈매니아 야생 여행
머라이어 섬을 여행하는 동안 운 좋게 데블을 만났었지만, 그 섬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데블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야생은 정해진 시간에 동물이 ‘짠’ 하고 나오는 곳이 아니니까요. 몇 시간 동안 기다리거나 찾아 헤매도 못 볼 수 있고, 반대로 아무 기대 없이 걷다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는 것, 야생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꼭 봐야지”보다는 “혹시 만나면 정말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태즈매니아의 야생 여행을 즐기면 좋을 것 같아요.

태즈매니아 자연을 여행하는 동안, 해가 지고 숲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잠시 걸음을 늦추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면,
“혹시……. 겁 많은 악마?”
태즈매니아의 밤이 조금 더 흥미로워질 거예요. 🙂
